이것은 야설도 아니고, 기사도 아니야~
“난 신고 안하는 여자만 건드려요. 보다시피 뒷끝이 없지.”
지난 14일 아침, 기자는 출근길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에서 K(43)씨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 앞서 기자는 K씨가 치한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약 3분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살구색 투피스를 입은 20대 여성의 둔부와 허리를 더듬던 중이었다.
기자는 일단 그와 피해 여성을 만원 지하철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하지만 피해 여성은 지하철 수사대에 신고하자는 기자의 제안을 거부하고 도로 열차에 올라탔다. 플랫폼에는 머쓱해진 기자와 성추행범만 남았다.
K씨는 교복 입은 여고생이나 여대생은 자신의 ’공략 범위‘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현실은 야동과 다르다”며 “여고생이나 여대생은 자기 보호본능이 강해서 위험하다”고 했다. 그의 주 타겟은 ’출근하는 직장인 여성‘이다. K씨는 매일 아침마다 한 시간 가량 1호선과 2호선을 ‘돌아본다’고 했다.
“직장인은 항상 다니는 길이니까 창피하기도 하고, 워낙 출근시간에 쫓기니까 어지간해선 내릴 때까지 꾹 참더라구요. 도망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저항하는 사람은 더 적죠. 방금 봤듯이 신고는 꿈도 못 꾸고요.”
K씨가 꼽는 ‘공략 대상’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우선 예뻐야 한다. 그리고 옷이 얇을수록 좋다.
“초미니, 가슴 파인 옷, 다 필요 없어. 어차피 손끝으로 느끼는 거니까. 청바지보다는 트레이닝복, 청치마보다는 정장이 좋아. 얇은 치마가 제일 좋죠. 요즘 쉬폰처럼 날리는 소재로 된 치마가 유행해서 너무 좋다니까. 그게 짧기까지 하면 더 좋고.”
그는 90년대 말 일본의 지하철 치한을 다룬 성인물을 보고 따라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치한 경력 10년이 넘은 셈이다. “이제는 더 이상 건드리면 안 될 사람과 좀더 밀어붙여도 될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는 말에는 일견 자랑스러움까지 묻어났다.
“딱 보면 어설픈 반항인지 더 했다간 잡혀갈지 감이 잡혀. 가끔은 대상이 자리를 옮기더라도 쫓아가서 계속하는 경우도 있지. 특히 자기 몸을 가방으로 가리는 부류는 백 프로 소심한 반항이야.”
간 혹 피해자가 내리면서 노려보는 경우도 있다. K씨는 “그럴 땐 윙크를 해주거나 환하게 웃는 얼굴로 되받아준다”며 “대부분의 여자들은 창에 비친 내 얼굴조차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고 자신만만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이 정의감을 발휘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성인물처럼 하드코어하게는 못하지. 대상이 저항을 전혀 못할 때는 가슴을 쥐거나 치마를 들추고 손을 밀어넣는 정도까지는 간혹 가능해. 한계치는 여자 손을 내 바지에 문지르는 정도. 이 선을 넘었다간 난 벌써 콩밥 먹고 있을걸?”
K 씨는 기자에게 “당신이 조용히 둘만 데리고 내렸으니 내가 이러고 있지, 만약 ‘당신 뭐야!’ 하는 식으로 그 자리에서 망신이라도 줬다면 지금 당신은 모욕죄로 경찰서에 있을 것”이라며 “아무 생각 없이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게 아니다. 다음부턴 조심하라”는 훈계까지 한 뒤 유유히 사라졌다.
기자는 과거 몇 차례 성추행을 제지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처럼 당당한 치한은 처음이었다. 강제추행은 피해자의 직접 신고가 필요한 친고죄다. 따라서 피해자가 신고를 거부하고 가버린 이상 기자에게 K씨를 구속할 방법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의 말처럼 오히려 기자가 무고죄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 1일에도 기자는 종로 근방에서 또다른 지하철 치한을 잡았던 적이 있다. 역시 피해 여성은 신고를 거절했지만, 대학생 Y씨(21)는 K씨에 비해 훨씬 고분고분했다. 그는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Y씨에게는 지하철 수사대로 끌고 가겠다는 기자의 협박도 잘 먹혔다.
Y 씨의 성추행 역시 일본 성인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편당 1-2기가 짜리 치한 영상을 300편 넘게 갖고 있다고 했다. 영상의 무대도 일반적인 지하철이나 버스부터 수영장, 해수욕장, 영화관, 도서관, 볼링장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Y씨의 성추행 경력은 고교 시절부터다.
“보다보니 한번 해보고 싶었고, 해보니까 의외로 어렵지 않아서 계속 하게 됐어요. 저항도 별로 안 하고.”
Y 씨가 K씨와 다른 점은 나이만이 아니었다. Y씨는 현대 성인물에 단련된 사람답게 범행 수법이 좀더 성인물에 가까웠다. 얇은 옷을 입은 여성을 노리는 것은 K씨와 같지만, 특히 끈이 목뒤로 묶이는 홀터 넥이나 어깨나 등이 드러난 옷을 노린다. 장난(?)을 치기 좋다는 이유였다. 그의 성추행은 단순히 더듬는 데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등 쪽이 X자 모양으로 되어있는 옷이면, 그 중 2-3개를 쪽가위로 자르는 거죠. 옷끈을 살짝 풀어본다던가, 치마 지퍼를 내린다던가, 치마 중간쯤에 가윗집을 낸다던가. 단순히 만지는 것보다 이런 걸 할 때가 훨씬 긴장되고 재미있어요.”
Y씨는 주 무대는 1호선과 4호선이다. 그는 “2호선은 사람은 많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탔다 한다”며 “일정하게 정해진 위치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 나와는 안 맞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1호선은 종로 근방, 4호선은 사당까지 사람들이 잘 내리지 않고 쌓이기만 한다고 덧붙였다.
- 김영록 인턴기자(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23/20090723015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