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호기심 (diversive curiosity)
호기심은 무언가를 탐구해보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데서 시작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인간은 미지의 것을 정복하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낸다. 1964년의 어느 연구에 따르면 어리게는 생후 2개월 된 아기도 여러 가지 문양을 보여주면 익숙하지 않은 문양을 선호하는 경향을 뚜렷이 보인다. 모든 부모는 아이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집요하게 가리키거나, 먼지를 먹으려고 하거나, 열린 문으로 뛰어나가려고 하는 상황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것이라면 무엇이든 흥미를 보이는 성질을 '다양성 호기심'이라고 한다.
어른에게 다양성 호기심은 새로운 것, 또는 어떤 것의 다음 단계를 알고 싶어 하는 열망으로 표현된다. 현대 세계는 다양성 호기심을 자극하도록 설계된 듯하다. 트위터와 블로그 글, 헤드라인, 광고, 모바일 앱들이 우리의 욕망을 부추긴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에 우리는 점점 참을성을 잃고 있다. 오늘날의 대중오락은 빠른 움직임을 통해 우리의 관심을 끌도록 제작된다. 요즘 미국 영화의 장면 지속 시간은 평균 2초에 불과하다. 1953년에는 무려 27.9초였다.
탐구 정신에는 다양성 호기심이 꼭 필요하다. 다양성 호기심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것으로 눈을 열어주며, 우리가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도록 독려한다. 하지만 다양성 호기심이 더 깊이 있게 숙성되지 않으면 아무 통찰도 얻지 못한 채로 이것에서 저것으로 관심만 휙휙 옮겨가는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가 될 수 있다.
지적 호기심 (epistemic curiosity)
제약받지 않는 호기심은 좋지만 방향성이 없는 호기심은 그렇지 않다. 다양성 호기심은 어떤 방향으로 잘 이끌어질 때, 깊이 있는 지식과 이해를 향한 열망으로 바뀔 때, 비로소 우리 삶에 양분을 줄 수 있다. 이렇게 더 깊이 있고, 더 많은 노력을 요하고, 더 방향성을 지운 종류의 호기심을 '지적 호기심'이라고 한다.
개인에게 지적 호기심은 정신에 양분을 주는 만족감과 즐거움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기업이나 국가 입장에서 지적 호기심은 다양성 호기심이라는 원료를 금으로 바꿔내면서 창조적인 역량을 극대화시키고 혁신에 불을 지필 수 있게 해준다. 화성에 무인 탐사선을 보내려면 우주의 행성을 탐험하고자 하는 열망도 있어야 하지만 탐사선을 어떻게 우주로 쏘아 올릴지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다양성 호기심이나 지적 호기심은 인간의 역사 내내 존재해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지적 호기심이 광범위하게 꽃을 피운 것은 사실 근현대에 들어서다. 인쇄술이 발달해 전 세계를 가로질러 아이디어들을 읽고, 공유하고, 결합할 수 있게 되고, 산업혁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실험할 시간을 갖게 되면서 비로소 지적 호기심이 전례 없이 꽃필 수 있었다.
오늘날 인터넷은 지적 호기심에 또 한 번 획기적으로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해야 마땅할 것이다. 인터넷이란 기본적으로 지식이 이전 어느 때보다도 널리 전파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니 말이다. 하지만 자극적인 다양성 호기심 충족에만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인터넷의 엄청난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